theTAX tv 채흥기 기자 | 상속·증여가 끝난 뒤 과세관청이 다시 감정평가를 실시해 세금을 추가로 부과할 수 있도록 한 현행 제도가 조세법률주의와 납세자의 예측가능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특히 감정평가 대상의 선정기준과 절차가 법률이 아닌 국세청 내부 훈령에 근거하고 있어, 비슷한 재산을 가진 납세자라도 국세청의 감정평가 대상에 포함되느냐에 따라 세금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 핵심 논쟁으로 떠올랐다.
한국세무사회(회장 구재이)와 한국납세자연합회(회장 최원석)는 지난 12일 한국세무사회 6층 대강당에서 「2026년 제2회 납세자포럼」을 공동 개최하고 납세자 권리보장제도의 지난 30년을 점검하는 한편, 상속·증여세 감정평가제도의 법적 문제와 입법적 개선방안을 집중 논의했다.
이번 포럼은 조세전문가인 세무사와 납세자 시민단체가 함께 현행 조세제도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구체적인 개선방안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특히 올해는 1996년 국세기본법에 ‘납세자의 권리’ 규정이 도입된 지 30년이 되는 해로, 제도의 외형적인 발전과 실제 국세행정 현장에서의 권리보장 수준을 함께 점검하는 자리가 됐다.
“국세청이 나중에 감정해 세금 다시 정한다”…법적 안정성 논란
포럼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은 김상술 세무사(세무학박사)가 발표한 「상속·증여세 등 감정평가제도의 법적 쟁점과 입법적 개선방안」이었다.
김 세무사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 시행령 제49조 제1항 단서와 국세청의 감정평가사업을 분석하면서, 현재 감정평가 대상의 선정기준과 절차가 법률이 아닌 국세청 훈령인 「상속세 및 증여세 사무처리규정」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을 핵심 문제로 지적했다.
상속이나 증여 당시 납세자가 신고한 재산가액에 대해 과세관청이 이후 별도의 감정평가를 실시하고 그 감정가액을 기준으로 다시 과세할 경우, 납세자로서는 신고 당시 최종 세부담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비슷한 재산을 보유한 납세자 가운데 일부만 감정평가 대상으로 선정될 경우 결과적으로 동일·유사한 재산에 서로 다른 세금이 부과될 가능성도 제기됐다. 결국 논쟁의 핵심은 ‘국민의 세부담을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을 과세관청의 내부 규정에 맡겨도 되는가’라는 문제다.
김 세무사는 과세관청이 내부 기준에 따라 감정평가 대상을 선정하면 납세자 간 조세 형평성이 훼손될 수 있고, 세부담에 대한 예측가능성 역시 크게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평가기간 지난 뒤 국세청이 새로 만든 감정가액은 시가서 제외해야”
김 세무사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감정평가에 관한 핵심 사항을 법률에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상증세법 제60조를 개정해 감정평가의 대상과 주체, 감정평가 수수료 부담 및 공제 등을 법률에 직접 규정하고, 시행령 제49조 제1항 단서와 국세청 「상속세 및 증여세 사무처리규정」 제72조를 폐지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특히 현실적인 대안으로 평가기준일 이전 2년 이내 실제 존재했던 매매·거래가액은 시가로 인정하되, 평가기간이 지난 뒤 과세관청이 새롭게 실시한 감정평가액은 시가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상속·증여 당시 이미 존재했던 객관적인 거래가액은 인정하면서도, 납세자가 당시에는 알 수 없었던 과세관청의 사후 감정 결과에 의해 세부담이 뒤늦게 달라지는 것은 제한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는 단순히 상속·증여세를 많이 부과하느냐 적게 부과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납세자가 재산을 상속하거나 증여받는 시점에서 자신의 세금 규모를 합리적으로 예상할 수 있어야 한다는 ‘법적 안정성’과 ‘조세법률주의’의 문제라는 설명이다.
감정 대상에 뽑혔느냐에 따라 세금 달라지면 형평성 문제
토론에 나선 문예영 배화여대 교수도 현행 감정평가제도의 구조적인 문제에 공감을 나타냈다.
문 교수는 과세관청의 사후 감정이 확대될 경우 상증세법상 기존의 ‘시가’와 ‘보충적 평가방법’이라는 재산평가 체계가 사실상 감정가액 중심으로 변경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감정평가 대상에 선정됐는지 여부에 따라 유사한 재산을 소유한 납세자 사이에서 세부담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은 조세 형평성 측면에서도 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안만식 세무사(세무법인 센트릭) 역시 현장 세무대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납세자의 예측가능성과 권리보호 문제를 중심으로 제도 개선 필요성을 제기했다.
토론자들은 단순히 과세관청의 감정평가 권한만 법률에 규정할 것이 아니라 기존 매매가액과 감정가액의 우선순위, 평가기간, 보충적 평가방법, 감정평가 대상 선정기준, 납세자에 대한 정보제공, 감정평가 비용 부담과 절차적 권리까지 함께 법률로 정비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납세자 권리보장 30년…제도는 늘었지만 실제 구제에는 간극
첫 번째 주제인 「납세자 권리보장제도의 시행 현황 분석과 개선방안」에서도 현행 납세자 권리보호제도의 실효성 문제가 제기됐다.
발표자로 나선 나성길 세무사(법학박사)는 1996년 국세기본법에 ‘납세자의 권리’가 신설된 이후 납세자권리헌장, 납세자보호관, 납세자보호위원회, 과세전적부심사, 고충민원, 권리보호요청 등 다양한 제도가 도입됐지만 실제 권리구제 성과와는 여전히 차이가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과세전적부심사의 낮은 채택률과 세무조사 분야 권리보호요청의 상대적으로 낮은 시정률 등을 들어 제도의 외형적인 확대만으로 납세자 권리가 충분히 보장됐다고 평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과세전적부심사 2심제 도입 ▲고충민원·권리보호요청의 국세기본법상 법제화 ▲납세자와 과세관청의 ‘대등관계’ 명문화 ▲세법 개정취지에 대한 정보제공 강화 ▲부과제척기간 임박에 따른 지연처리 개선 등을 제안했다.
박재혁 세무사(세무학박사)와 허원 서울시립대 교수도 토론을 통해 소액 조세사건에서 상대적으로 대응력이 부족한 납세자의 권리보호 문제와 훈령에 근거하고 있는 권리구제제도의 법제화 필요성 등을 제기했다.
구재이 회장 “세금제도의 주인은 국민…국회 입법까지 이어져야”
한국세무사회 구재이 회장은 “세금제도의 주인은 납세자인 국민”이라며 “납세자 권리는 법과 제도에 규정돼 있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되고 국세행정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상속·증여세 감정평가제도에 대해서는 “감정평가 대상 선정기준과 절차가 과세관청의 사무처리규정에 근거하고 있는 만큼 조세법률주의에 부합하도록 입법적으로 해결해야 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구 회장은 이어 “납세자 권익보호를 사명으로 하는 세무사가 납세자 곁에서 제대로 역할을 할 때 납세자의 권리가 온전히 보장될 수 있다”며 “이번 포럼에서 제시된 개선방안이 정부의 세제개편과 국회의 입법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한국세무사회가 적극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포럼은 도입 30년을 맞은 납세자 권리보장제도의 성과를 평가하는 자리를 넘어, 과세관청의 재량은 어디까지 허용돼야 하고 국민의 세부담을 결정하는 기준은 어디까지 법률에 명확하게 규정돼야 하는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는 점에서 향후 세법 개정과 국회 입법 논의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